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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7

김교신 / 겸허한 심정을 / 1937년 10월

‘학이시습지불역열호’라는 일구절로써 그 위대한 존재를 요약하며  논어의 수천 어구를 대표하게 한 공부자는 심히 학습을 즐겨한 어른이었다.  부자(夫子)는 스스로의 말을 듣건대  자왈 십실지읍 필유충신 여구자언 불여구지호학야 (子曰 십실지읍 必有忠信 必有忠信 不如丘之好學也)라고.  호학(好學)은 공부자의 자임(自任)하는 특색이었다.  그리고 학업을 좋아한다 함은  필왈(必曰) 주역(周易)의 표지를 7-8번 체찬(替纂)하는 일만이 아니다.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 박사에게는 무용한 시간이 없었다 함도  호학의 일례거니와 참으로 호학하는 자는 서적에서 배울 뿐만 아니라,  무학한 농부와 노파에게서도 배울 것을 발견하며 능히 배워 내는 겸허한 위인이다.  선진국에 가 배울뿐더러 후진국으로 보이..

김교신 2024.09.18

김교신 / 미해결의 해결 / 1941년 8월

정리도 하고 경영도 해 놓고···  타인에게 폐 끼치지 않고자 하면서  족하(足下)를 내려다보면 언제까지든지  연쇄적인 미해결의 안건이 종적부절(踵績不絶)하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할진대 이 일에 일생을 바침도  결코 무가치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부름을 받아 떠나는 자의 후사(後事)를 손가락질 말라.  비록 그 뒤에 어지러운 것이 남았고  다하지 못한 의무가 길었다 할지라도  떠나는 자에게는 부르심에 응하여 ‘예’ 하고 나서는  그 일이 모든 일의 해결이요, 가능한 일의 전부이다.  나서는 자로 하여금 뒤돌아보게 말라,  미구(未久)에 다 함께 산더미 같은 미해결 문제를 두고 갈 신세인저.

김교신 2024.09.11

김교신 / 고등 유희 / 1941년 7월

『성서조선』 지를 평하여 학생들의 ‘고등 유희’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 이가 있다. 그 까닭은 신학교 졸업이라는 것 같은 소위 자격자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 비몽사몽간에 ‘성신(聖神)’의 지시를 받아서 ‘사명’을 띠고 간행하노라고 간판을 걸지 않은 잡지라는 것, 전도자는 전도함으로써 의식(衣食)하겠노라고 악을 쓰지 못하는 주필이라는 것, 교회의 기관지도 아니요 선교사나 감독의 지령으로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 등등의 이유인 듯. 과연 본지는 교권에 속한 자격도 없이, 문필의 재질에 관한 확신도 없이, 자원에 대한 보장도 없이 시작해서, 이 일로써 의식의 자(資)를 보태 쓰지 못했을뿐더러 다달이 나는 결손도 괘념치 않고서, 그저 하고 싶어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제150호까지 발간하였다. 그 심지―..

김교신 2024.09.11

김교신 / 독서의 계단 / 1941년 9월

최근에 어떤 전문학교 학생 하나가 구라다 햐쿠조(倉田百三)  저 『사랑과 인식의 출발』이라는 책을 품고 와서 이 책을 읽고서  심령상의 제2혁명을 경험하였노라고 감격에 넘쳐서 고백하였다.  이 책은 여러 해에 걸쳐서 발표했던 논문을 수집하여 한 권으로  편찬한 것이어서 이 책 자체 안에 처음 부분의 사상을  나중 부분이 정정하듯 저자 자신의 서문 중에도 그 치기(稚氣)를  면치 못함을 자인하듯 하였으나, 그런 점이 도리어 20대의  청춘에게는 활기 있고 친근미가 있어서 가독가익(可讀可益)하다 하니  그도 가연(可然)한 말이다. 청년다운 인생 탐구의 등정을 격려하며  보다 더 높은 독서에의 ‘사다리’의 역할은 착실히 할 것이다.  저자 구라다 씨는 그 청년기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太郞)  저 『선(善)의 ..

김교신 2024.09.11

김교신 / 근본을 잊지 말라 / 1934년 11월

C군! 10년간 저가 실직 중에서 아무 한 일 없이 지낸 것은  피차 동정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그러나 직(職)의 유무를 사람의 능, 무능으로만 비판하고자 하며,  특히 저의 신앙까지 폄론(貶論)하고자 하는 군의 태도에 우리는  급히 찬동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 군의 과거를 회고하여 보라.  군에게 오늘이 있음은 오로지 군의 수완 활동과 또 군의 소유한  신앙 능력으로 된 줄 아는가. 만일 그렇다면 이는 중대한 착각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 시대의 신세를 망각하고 뽐내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 아닌가. 군의 민완(敏腕)을 우리는 귀히 여기나,  군의 ‘자기 신뢰’를 우리는 두려워하며 또 가증하게 안다.

김교신 2024.09.11

김교신 / 성서소감 / 1937년 7월

우리는 올봄에 서재 한 간을 지었다.  단 한 간을 증축한 것이니 조성(造成) 운운할 것도 없으나  우리 스스로의 의장(意匠)과 노력과 고심이 많이 들었으므로  그 성조(成造)의 감상만은 적지 않다. 첫째로 미(美)에 대한 무관심이다.  본래 뜻은 있으면서도 실현 못하던 건축을 이번에 성취한 것은  『창조의 생활』 김주항(金周恒) 씨의 잡석과 양회로 지은 주택에서  본을 보았고 힘을 얻음이 많았다. ‘그렇게 하여도 집이 된다면 나도’ 하는  생각이 난 것이다. 건축에 미를 표현함에는 예술적 재(才)와 물질적 부(富)를 요한다.  재도 부도 가지지 못한 자는 부득이 미에 대하여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다.  오직 한 가지 미의 표현으로 용마루 남단에 추녀를 붙인 것은 목수의  전문적 기술로 인한 인습적인 버릇..

김교신 2024.09.10

김교신 / 조와 ( 弔蛙 ) / 1942년 3월

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었다.  층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담(潭)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 담 속에 솟아나서 한 사람이 꿇어  앉아서 기도하기에는 천성(天成)의 성전이다.  이 반상(磐上)에서 혹은 가늘게 혹은 크게 기구(祈求)하며  또한 찬송하고 보면 전후 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담 속에서  암색(岩色)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중에 대변사(大變事)나 생겼다는 표정으로 신래(新來)의 객에  접근하는 친구 와군(蛙君)들. 때로는 5-6마리, 때로는 7-8마리.  늦은 가을도 지나서 담상(潭上)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함에 따라서  와군들의 기동(起動)이 일부일(日復日) 완만하여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투명(透明)을 가리..

김교신 202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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