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었다.
층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담(潭)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 담 속에 솟아나서 한 사람이 꿇어
앉아서 기도하기에는 천성(天成)의 성전이다.
이 반상(磐上)에서 혹은 가늘게 혹은 크게 기구(祈求)하며
또한 찬송하고 보면 전후 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담 속에서
암색(岩色)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중에 대변사(大變事)나 생겼다는 표정으로 신래(新來)의 객에
접근하는 친구 와군(蛙君)들. 때로는 5-6마리, 때로는 7-8마리.
늦은 가을도 지나서 담상(潭上)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함에 따라서
와군들의 기동(起動)이 일부일(日復日) 완만하여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투명(透明)을 가리운 후로는 기도와 찬송의
음파가 저들의 이막(耳膜)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격조(隔阻)하기 무릇 수개월여!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틈의 빙괴(氷塊)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와군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담 속을 구부려 찾았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 담 꼬리에 부유하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 겨울의 비상한 혹한에 작은 담수의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동사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潭底)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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