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환이 본 김이태
박창환은 김이태보다 나이로는 꼭 두 배인 96년을 살았다.
김이태는 48년 동안 이 땅을 걸어갔다.
박창환은 남강 이승훈이 설립한 오산학교에서 스승들을 만난다.
김이태는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제자들을 만난다.
두 사람은 장신대에서 함께 가르치는 자로 서 있었다.
그러나 김이태는 쓰러지고 박창환은 90살이 넘은 나이에도 강의를 이어간다.
이들의 공통점은 가르침이(교수)였다는 점에 있지 않다. 신학을 섬김의 도구로 사용한 그 마음에 있다.
김이태보다 다섯 배가 더 되는 책을 저술한 박창환은 김이태의 박사 학위 논문이 책으로 출간되는 일을 돕는다.
김이태의 박사 학위 논문이 책으로 출간되는 과정과 결과에는 김이태의 제자들과 박창환이 있었다.
박창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김 교수는 비록 짧게 살았지만 티없이 깨끗하게 살았고, 제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깊은 인상을 남기고 떠났다.
그래서 그를 잊지 못하고 그리며 존경하는 마음들이 모이고, 쌓이고 넘쳐서 이렇게 그의 논문을 번역 출판하는 사업을 일으켰고,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사람의 한 번 났다가 죽는 것은 상사(常事)이지만,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덕을 끼치고, 흠모하고 사모할 수밖에 없는 그 어떤 매력을 가지고 살다가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부러운 것인가!
호랑이는 가족을 남기고 죽는데 사람은 죽으면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말이다.
고 김이태 교수는 후배들에게 사랑과 진실과 강직과 순결의 덕을 심어 주었다.
그의 고매한 성품과 인격과 학문이 이제 그의 제자들의 이 출간 사업에서 반사되어 나왔다.
이 논문을 번역한 여러 후학들과 그것을 책으로 내기까지 여러 모로 수고한 75기 동문들 전체의 노고를 다시 치하하면서.
그 책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고 진리의 빛을 얻는다면, 하늘에서 지켜 보시는 고인도 기뻐하실 것이고, 우리들 모두의 기쁨도 될 것이다." < 판넨베르크의 기독론의 방법론적 구조 비판 > 8~9쪽
- Witkr